고양이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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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옥은 누가인가?

슈레딩거의 고양이 2017. 4. 21. 23:34

김용옥은 누가인가?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도올 김용옥이 인터뷰 중 다섯 명의 후보자에 대해서 짤막한 촌평을 

다고 합니다. 

 

1) 문재인- 사심 없음, 투명함, 든든함 

2) 홍준표- 막가파 식이지만 밉지는 않음

3) 안철수- 불투명, 가슴의 울림이 없음

4) 유승민- 지지해줘야 할 건전한 보수

5) 심상정- 지켜줘야 할 보물 같은 진보


문재인에게는 후하고 안철수에게 박합니다. 


 지난 촛불집회 때 단상에 올라가 발언하던 김용옥을 생각납니다. 흥분하여 주어진 시간 보다 발언을 길게해 사회자가 제지 하는 상황까지 발생했습니다. 자의식이 대단한 사람인 건 알았지만 단상에서 발언하는 모습을 보며 실감 할 수 있었습니다. 김용옥도 자극적인 선동에 능한 사람입니다. 저는 강준만의 "이문열과 김용옥" 이라는 실명비판서를 통해 그에 대한 이해를 갖게 되었습니다. 목사님도 아시겠지만 강준만 교수는 목사님의 '설교 비평' 처럼 인물과 사상을 통해 '지식인 실명 비판'의 장을 연 인물입니다. 또한 주장만 한 것이 아니라 이에 반박하는 견해를 자유롭게 <인물과 사상>에 실음으로써 '논의의 장'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 받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비평 3권 '설교의 절망과 희망' 처럼 말입니다.  

강준만은 '이문열과 김용옥'에서 아래와 같이 주장합니다. 
"어찌됐건, 김용옥이 김우중을 '성인'으로 모신 건 그의 어린아이 같은 유치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어떤 이들은 그걸 아주 사악하게 보는데, 세상에 그런 바보 같은 사악함이있을 수 있는지 한번쯤 생각해 보는 게 어떨까 한다.
어린애와 같은 김용옥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에겐 무조건 감격한다. 반면 자기를 몰라주는 자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건 간에 경멸하고 증오한다. 어린애와 같은 김용옥은 그런 사실마저 숨기지 않고 그게 무슨 자랑이라고 되는 양 발설한다. 김용옥은 『대화』에서 이렇게 말한다.
"난 날 못 알아보는 자들을 경멸하는 엘리티즘이 뼛속까지 깊게 물들어져 있다. 그리고 날 알아보는 자들에게 감격하는 치정주의가 있다."
김용옥이 김우중을 우러러본 이유도 매우 단순하다. 어린애들이 맛있는 거 사주는 어른을 좋아하는 이유와 똑같다. 그 아저씨가 어떤 아저씨인지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맛있는 걸 사 주었다는 사실만이 중요한 것이다. 김용옥은 김우중이 사준 '맛있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김 회장이 나에게 인사를 한 탣는 제스처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진실한 공손이 감추어져 있었다. 나는 사실 감격했다. …… 이 세상을 사는 데 가장 신나는 일은 자기를 인정해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일이다. …… 나는 여태껏 이 사회의 이스태블리쉬먼트 지도급인사로부터 과감한 인정을 받아본 적이 없다. 주변의 어린아이들, 나의 원광대학 학우들까지도 김용옥이라는 인물을 처음부터 깔보고 들어오려고 애를 쓴다. 그 기쓰는 모습들이 처량하다. 단지 내가 학생이라는 이유 때문에 학생으로서의 모든 것을 강요당해야만 하는 내 자신의 모습이 비애롭다. 이런 피해 망상증에 걸려있는 나의 의식에 김우중 회장의 행위는 정말 정직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과연 그게 전부였을까? 그렇진 않다. 어린애들도 때론 매우 영악하다. 김용옥은 "고대 철학과 교수로 있을 때 대회사 회장실 다니면서 제 연구에 일 년에 천만 원만 투자하라고 구걸하러 다니면서 면박당했던"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연구도 연구지만 그의 궁극적인 꿈은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대학을 하나 만드는 거다. 나는 김용옥이 김우중에게서 그 꿈의 실현 가능성을 꿈꾸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닌게 아니라 김우중은 김용옥에게 지원을 약속했고 두 사람 사이에선 대학의이름을 두 사람의 호와 이름을 따 '도우서원'으로 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얘기까지 오고 갔다. 비록 실현되진 못했지만, 김용옥으로선 김우중을 '성인'으로 떠받들 충분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 pp.120-121

나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권위주의적인 지식인들이 적잖이 있다는 걸잘 알고 있다. 이젠 그런 풍토는 끝장 내야 한다. 우리 모두 한국 지식인들의 문화특권주의 박탈하고 지식폭력 척결해 명랑사회 이룩하자. — p.296

"난 중, 고, 대학 시절을 상당한 열등의식 속에서 보냈습니다. 형에 대한 것도 그렇지만 큰형의 애들이 5남매인데 거기서 딸 하나만 빼고 아들 넷이 전부 경기중학교를 들어갔거든요. 큰형도 경기였고, 그래서 5부자가 모두 경기 출신이예요. 그 당시는 그게 쉬운 게 아니죠. 영국의 이튼스쿨보다 더 어려운 게 경기였으니까. 집안에는 조카들의 찬란한 경기뺏지가 우르르르…… 난 그때 큰형집에서 살았는데, 나 혼자만 보성 출신에다가 서울대 뺏지를 못 달았습니다. 그러니깐 내가 이런 환경 속에선 주눅들어 살 수밖에 없었죠. 안 그렇겠습니까? 그 중에 큰 조카 한둘은 나와 나이가 비슷해서 지금도 나를 잘 이해 못해요. 저 새끼는 보성에서도 공부 못한 새낀데 지금 폼 잡어봐야 얼마나 잡겠니 하고 생각할지도 모르죠. 걔들이 내 실체를 볼 수 없는 것은 좀 운명적일 것 같애요."

이게 한두 번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그의 책마다 자주 출몰하는 이야기다.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그럴까? 그는 1990년 9월에 쓴 글에서도 일본 학자들에게 김용옥을 욕하면서 김용옥의 일본 초청을 반대한 '서울대학 동양사학의 대가라는 민모 교수'를 욕하면서도 자신의 한을 토로하는 걸 빠뜨리지 않는다.

"네끼 이 녀석! 회의장에 나와 "끼웃거리는 그 놈의 민가 놈 쌍판때기에다가 검지와 중지의 기절골의 강한 압력을 세차게 가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내 이미 마하트마 간디보다도 더 심오한 비폭력철학을 확립한 터인지라 허허 웃고 말았다. 국제적으로 그렇게 씹어대서라도 자기의 국제적 석학임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학인의 가련한 꼬라지가 한없이 연민스럽게만 보였다. 허긴 가까운 집안 내에서조차 케이-에스를 나왔다고 자만에 빠져 옛날 생각만 하고 있는 어린 학동에게 지금까지도 무시를 당하는 씁쓰름한 심정에 사로잡힐 때가 한두 번이 아닌 다음에야 내가 서울대학에게 뭘 더 바랄 게 있으랴!"(고딕체는 인용자 강조) — pp.19-20

"김씨는 노 대통령에게 최대의 미사여구를 사용하여 찬사를 보낸다. 편지는 인간적으로 만나고 싶다는 얘기에서 시작된다. 김씨에 의하면 노대통령은 이미 사사로운 개인이 아니다. 개인은 개인이되 '보편사적 개인'이다. 그런 보편사적 개인인 노씨를 철학자로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용옥은 노 대통령을 '아내보다 더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역사의 대세에 휩쓸려간 카터나 레이건, 박종철과 이한열과는 달리, 노씨야말로 '새 역사의 개벽의 대운세를 결정할 수 있는 실존적 결단의 여지를 소유한', '아사달 창세기 이후 최초의 행운을 가진', '우리 조선의 자랑스러운, 위대한 대통령'이다. 또 김씨는 한국인들이 '민중혁명의 전기'를 마련한 6·29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다고 불평하고 있다. 김씨는 '이 땅의 지고한 영도자 노태우'에게 자신의 '애틋하게 사랑하는 마음'을 직접 전달할 길이 없음을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김씨는 '노 대통령을 절대로 비판하거나 미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하면서, '믿어 주십시오. 이 보통사람 도올의 거짓 없는 충정을!' 하고 호소한다." 이상 이문열과 김용옥

그가 노태우에게 보낸 편지는 이와 같습니다. (신동아에 기고 됨)


"노태우 대통령께 아뢰옵니다.
대통령께서 저를 알고 계신지, 혹은 제 문장이나 책을 읽으신 적이 계신지, 저로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대통령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우선 저는 노태우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이 나라의 대통령…대통령이라는 지고한 직업을 가지신 분의 분망한 시간을 공연히 제 편지로 인해 뺐는다는 것이 결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고,…인간적으로 만나고 싶었습니다…한 번 만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나이로 따져도 저에겐 셋 째 형뻘이니까 그렇게 소원하게 느껴질 것도 없구요….

(가운데 몽땅 생략)저는 이글을 쓰면서 너무도 울고 또 울었습니다….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격려해 주십시오. 당신에게 해가 가는 일을 저는 하지 않을 것 입니다. 민중과 학생의 욕을 얻어먹더라도 저는 당신의 아름다운 6공의 신화를 만드는 데 일조를 하고 싶습니다."

이 글은 김용옥이 <신동아> 1990년 1월호에 쓴 글인데, 그는 이 글을 보낸 뒤 노태우 쪽으로부터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하자 그로부터 몇 달 뒤 느닷없이 노태우 를 비판하기 시작 했습니다. '지고한 노태우대통령'은 '노군'이 되었고, '노는 이미 이 나라 대통령이 아니다'라는 단언이 이어졌습니다. 
최근에는 시진평에 대한 성찬이 대단 했습니다. 대한민국을 자신들의 속국 정도 생각하는 이를 극찬합니다. 글이 길어 지니 내용은 생략 하겠습니다. 

문재인의 장점이 김용옥 앞에서 힘을 발휘할 듯 합니다. 박근혜에게 까지 90도로 인사하는 문재인의 '겸손'이 김용옥에게 대단한 어필을 했다는 생각입니다. 그의 발언 이력을 보니 그의 평가가 언제 바뀔지 궁금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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