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생각하는 연필/코이노이아 (9)
고양이의 사회학
문재인 정부가 탈핵을 선언하면서 김익중 교수가 쟁점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는 동국대 의과대학 교수로 원자력안전위원회 전 위원이었습니다. 조선일보는 그를 작정하고 '괴담교수'로 공격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조선일보의 공격에 의도 있다는 것을 제해 놓더라도 그의 주장이 과연 타당한가는 확인해야 될 부분이다. 그는 강연에서 일본의 방사능 오염 관련 통계를 사용해 탈핵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가 인용하는 정보는 과연 정확한 것인가? 아래의 '정의당 게시판'에 올라온 반박글을 보면 상당한 허점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지 : 후쿠시마 원전 사고 현장 사진 김익중 교수는 일본정부가 방사능 오염에 대해 거짓말을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본정부가 후쿠시마 원전으로 인한 방사능 오염을 속이기 위해서는 포섭 해..
한국적 팝 발라드의 시작을 연 유재하는 1962년 경북 안동의 하회마을의 유복한 가정의 3남 3녀 중 다섯째로 태어 났습니다. 어려서 부터 음악을 좋아 했던 그는 초등학교 때 이미 아코디언, 첼로, 기타를 연주 할 수 있었습니다.. 또래 애들과 다르게 '어니언스'의 노래를 연주하고 부르는게 일상 이었다고 합니다. . 그는 중학교 때 이미 프로급 기타 실력을 보여 주었습니다. 고민 끝에 클래식으로 진로를 정했지만 여전히 노래 부르고 곡 쓰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1981년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에 들어 간 그는 정원영, 김종진, 박성식, 장기호, 전태관 등과 교류하며 음악적 역량을 키워 나갑니다. 작곡, 작사, 편곡 뿐만 아니라 다룰 줄 모르는 악기가 없을 정도록 천재적인 재능을 보여 줍니다. 1982년..
암으로 세상을 떠난 엄마를 생각하며 쓴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의 시. 감동을 준다. 부재가 존재를 드러낸다.
오월 광주에서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가신 모든 분들을 기립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국가로!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임을 위한 행진곡 스윙 재즈 버전 http://youtube.com/watch?v=CCUKY5dgYPc 쿨 재즈 버전 http://youtube.com/watch?v=CCUKY5dgYPc 퓨전 재즈 버전http://youtube.com/watch?v=_dKB5WJTnB8
5.18 광주민주화 운동의 정신이 헌법에 꼬옥 들어가길 바란다. 직장의 나이 지긋한 놈이 5.18을 폭동 인양 말하려다 멈칫했다. 늙은 일베다. 문재인 대통령은 5.18 진상과 책임을 반드시 밝혀내길 바란다. 폭동이라 하는 망언은 더이상 나와서는 안된다. 살인마 전두환 신군부 일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5.18을 통해 내란을 일으켰다고 조작해 그에게 사형선고를 내렸었다. 사진은 1987년 9월8일 망월동 묘역을 첫 참배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모습니다. 오열하는 김대중의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난다. 이명박 박근혜를 잇는 정권의 출현은 더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5.18은 국경일로 지정해정신을 기려야 한다.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산을 오르는 경험을 한 이라면 많은 공감이 되리라 생각 됩니다. 산을 오르는 것은 하나님 경험과 비슷합니다. 대구샘터 교회 정용섭 목사님의 글입니다. 많은 공감이 있어 공유 합니다. "에베레스트 정상" 에베레스트 등반의 최종 목표는 8848미터 정상에 서는 것이다. 정상에 서면 무엇을 만날 수 있을까? nothing! 아무 것도 없다. 에베레스트 산의 신령한 주인이 맞아주는 것도 아니다. 정상은 그냥 정상일 뿐이다. 거기서 다른 봉우리를 내려다볼 수는 있겠지만 그 외의 신비로운 어떤 것을 발견할 수 없다. 정상은 무(無)다. 하나님 경험도 산악인의 에베레스트 정상 경험과 같다.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가 상상하거나 기대하는 것이 없다. 우리가 세상..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기23:10 어려움 가운데 처해 있는 크리스챤이 많이 읽고 힘을 얻는 대표적인 구절입니다. 고통 가운데 있는 이들이게 힘이 되는 구절입니다. 이 구절은 보통 받고 있는 고통을 잘 참고 견디면 더욱 성숙한 사람이 된다는 것으로 이해 됩니다. 하지만 해당 구절은 그러한 의미로 해석하면 23장 본문의 맥락과 맞지 않고 어긋나게 됩니다. 23장 1절부터 10절 까지 내용은 욥이 자신의 결백과 무죄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개역 개정이 오역을 한 것으로 봐야 맥락이 맞습니다. 개역개정의 오역을 확인하기 위해 다른 번역 본을 확인해 보았습니다. 먼저 "단련하신"의 번역된 단어는 히브리 원문은 "시험하다, 검사하다" 입니..
어디서나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것은 그냥 이루워지지 않았다. 피의 역사 속에서 이뤄진 숭고한 결과물이다. 대한민국 공화국 헌법 아래 있다면 누구도 복음을 전한다고 해서 목숨을 내놓지 않아도 된다. 몰론 가문의 반대로 여전히 목숨을 내놓어야만 하는 분위기 속에 믿음을 지켜가는 분들도 있지만 법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종교의 자유를 보장 받는다. 종교에 대한 관용의 역사는 생각 보다 길지 않다. 유럽의 경우 루터의 종교개혁(1517년) 이후 1618~48년에 일어난 30년 전쟁 등 무수한 피를 흘리고서야 '종교의 자유를 허락한 최초의 근대적 조약인 '베스트팔렌조약'을 체결하여 개신교 국가들의 생존의 발판을 마련했었다. 하지만 발판이었을뿐 세계는 여전히 종교의 관용을 베풀고 있지 않는 곳이 너..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신랑 되신 예수를 하루라도 빨리 뵙길 원할 것이다. 성도는 하늘 구름이 조금만 이상해도 주님 오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재림에 대한 갈망이 있어야 한다. 삶의 성취감에 취해 주님이 더디 오시길 바라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우리는 삶이 고단하여도, 삶이 평탄하여도 재림에 대한 열망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미 왔으나 아직 오지 않은 종말. 종말론적인 삶의 긴장감을 유지해야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가능할 것이다. 어제에 감사하고 오늘에 최선을, 그리고 내일의 주님 오심을 갈망하는 삶. 오늘날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 끊이지 않는 전쟁, 높은 치사율의 전염병 앞에서 종말에 대한 관심이 다시 대두 되는 듯 하다. 휴거, 재림, 7년 대환란 등 종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