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사회학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며 안토니오 그람시 '옥중수고' 본문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며 안토니오 그람시 '옥중수고'
Antonio Gramsci (1891~1937)
잔혹한 파시즘의 탄압 가운데 민중의 해방을 자유를 꿈 꾼 안토니오 그람시. 슬픈 듯 사유하는 그의 눈 빛은 감동을 줍니다. 4월27일이 안토니오 그람시가 영면한 날입니다. 1891년 태어나 46세의 치열함 삶은 옥고를 끝내 견디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를 가둔 파시스트 독재자 무솔리니는 그의 소생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확실시 된 후에야 그의 석방을 발표했습니다. 그가 죽기 며칠 전이었습니다.
그람시는 4살 때 사고로 등이 굽는 장애인이 되었습니다.신경성 질환 등 평생을 병고에 시달렸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25살 청년의 한창 나이임에도 조그만 관과 수의를 준비 했다고 합니다. 그는 평생 약자의 고통을 몸으로 체험했습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인간해방의 꿈은 기대와 다를게 흘렀습니다. 사회주의 진영은 패배한 혁명과 엇갈리는 전망 가운데 안개 속을 걸었습니다. 노동자평의회의 선구적 조직가 였던 그는 이탈리아 공산당(PCI)의 핵심적인 성원으로 공산당을 이끌었습니다. 그는 지속적으로 정치신문과 당 기관지에서 열정적인 집필가로 활동했습니다. 그람시는 이탈리아 반도에서 혁명적인 노동자 대중의 운동이 실패하는 과정 그리고 노동계급의 열광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파시즘이 발흥하는 과정을 목도 했습니다. 혁명의 몰락과 패배, 그리고 뒤이은 파시즘의 광란은 그람시를 절망으로 몰고 갔지만 새로운 사고의 전환을 가져 오게 합니다. 그람시의 질문은 시작되었습니다. 1928년 5월 28일, 파시스트 재판에서 “우리는 이 자의 두뇌가 작동하는 것을 20년 동안 중지시켜 놓아야 한다”는 검사의 마지막 논고와 함께 그람시의 오랜 유형과 감금 생활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파시스트들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맑스주의 역사의 분기점을 이루는 것과 동시에 진정한 의미에서의 맑스주의 정치이론을 최초로 발전시킨 유명한 <옥중수고>가 탄생합니다. 그람시는 고통스런 감금 생활의 와중에 위대한 저술을 만들었습니다.
그가 감옥에서 남긴 방대한 분량의 수고가 세상의 나오기 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그가 수고를 집필하면서 접할 수 있었던 글과 자료들은 너무나 제한적이었습니다. 더욱이 그의 손으로 쓰이는 모든 글들은 이탈리아 파시스트들에 의해 철저한 검열을 받았습니다. 그는 직접적인 의미를 드러내는 단어들을 사용 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의도를 숨키기 위해 언어적 제한을 가한 것입니다. 그람시 사상의 어려운 부분은 이러한 열악한 저작 상황과 관련이 깊습니다. .그가 감옥 안에서 오랜 지병으로 인한 극심한 육체의 고통을 겪는 와중에 써내려간 저작이 바로 '옥중수고'입니다.
연세대 김동노 교수가 '사회사상' 수업 강의안에서 아래와 같이 그람시의 옥중수고에 대해 말합니다. 전문을 올립니다.
통상적으로 그람시는 속류 맑스주의의 결정론적 시각을 거부하고 상부구조의 자율성에 천착한 이론가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보다 구체적으로 경제적 토대와 상부구조, 혹은 시민사회와 국가(또는 흔히 국가와 동일한 개념으로 받아들여지는 정치사회) 등의 개념과 이 개념들 간의 관계에 주목하여 본다면 그람시에 대한 이해가 그리 간단 하지만은 않습니다. 이는 무엇보다도 그람시의 대표적 저작인 <옥중수고>가 집필되던 과정의 특수한 상황들에 기인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국가와 시민사회, 그리고 경제적 토대와 상부구조에 대한 <옥중수고>의 단편적이고 비체계적인 서술들로 인해 그람시에 대한 해석은 대단히 엇갈리고 상반되는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견 비일관적이고 심지어 서로 모순된 것으로까지 보이는 그람시의 진술들은, 그의 관심이 국가와 시민사회의 경계를 구획하거나 분석하는 데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염두에 둘 때 오히려 그로부터 풍부한 함의를 도출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되어야 할 것입니다. 페리 앤더슨이 지적하듯 국가와 시민사회에 대한 그람시의 세 가지 위상의 정의가 서로 상충하고 그로 인해 헤게모니 개념 역시 의미의 진동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한 비일관적이고 상이한 진술들이 무엇보다도 강제와 동의, 지배와 헤게모니의 가변적인 결합을 통한 계급지배의 유지에 대해 그람시가 지니고 있었던 집요한 관심에서 연유한다는 것이 보다 중요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람시는 서구의 현대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의 동의를 획득하는 메커니즘을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 그리고 나아가 이를 전복시키기 위한 피지배계급의 정치전략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에 필생의 노고를 다했습니다. 상부구조의 자율성에 대한 그의 지속적인 강조는 궁극적으로 경제적 토대와 계급관계에 대한 그의 집요한 관심에 뿌리박고 있습니다. 그람시는 상부구조가 생산관계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하였으며 또한 그들간의 변증법적 관계에 주목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것입니다.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
군사학과 정치학의 유비를 통해 이루어진 그의 유명한 ‘진지전’에 관한 언급들은, 바로 이러한 맥락을 통해 서구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주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맑스주의 정치전략의 핵심적 속성으로 간주됩니다. 그는 “현실에 있어 진지전은 단순히 참호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장의 군대 후방에 위치한 영토의 조직적․산업적인 전(全) 체계로 이루어진다. 즉 진지전은 대포, 기관총, 소총 등 기민한 화력, 특정한 지점에 집중될 수 있는 무장한 세력, 적진돌파나 후퇴시 물질적인 손실을 신속히 복구해줄 수 있는 풍부한 공급 등에 의해 결정된다(247)”고 기술하였습니다. 쉽게 파악될 수 있듯이, 기동전과 진지전에 대한 그람시의 세심한 서술은 곧바로 그의 헤게모니론, 나아가 시민사회론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진지전’의 문제틀은 곧 시민사회를 둘러싼 계급투쟁에서 헤게모니 전략에 관한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지배계급의 물리적 강제와 지배의 차원으로는 그들이 피지배계급으로부터 향유하고 있는 동의가 설명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시민사회 내에서 그들에 대한 대중적 동의가 성취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그람시는 계급지배의 다차원적인 속성을 분석하기 위해 부르조아 계급에 대한 대중적 동의와 지지를 재생산하는 ‘상부구조적’ 요소들의 역할에 주목하였습니다.
"시민사회라는 상부구조는 근대적 전쟁에서의 참호체계와 같다. 전쟁에서는, 격렬한 포격으로 적의 모든 방어체계가 파괴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당지 외곽주변만이 파괴된 것에 불과하여, 아군 돌격병들이 나아가 공격할 때 여전히 유효한 적의 방어선에서 저지되는 일이 자주 발생하곤 한다(248)."
위의 인용에서 보듯이, 시민사회는 그람시에게 있어 하나의 참호체계와 같은 것입니다. 다시 말해, 시민사회를 통해 이루어지는 계급지배의 메커니즘과 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계급투쟁은 일종의 진지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진지전에서 주요한 정치전략을 그람시는 헤게모니 개념을 통해 설명하고자 하였습니다. 그의 헤게모니 개념은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에 대해 확보하고 있는 지적․도덕적․정치적 지도력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이는 자발적 동의와 지지, 합의를 통해 획득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강제력에 의존하는 지배와 그 성격을 달리하는 것입니다. 지배계급의 헤게모니는 시민사회 내에서 관습과 전통, 문화, 상식, 이데올로기 등은 물론 공장, 학교, 교회, 가족 등과 같은 대중적인 조직과 제도들을 통해 재생산됩니다. 어떤 순수하고 기술적인 제도들조차 이러한 헤게모니의 영향력에서 예외적인 영역이 될 수 없습니다. 즉, 시민사회의 모든 부분은 바로 이 헤게모니의 구사와 재생산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진정한 계급지배와 계급투쟁의 장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피지배계급의 정치전략은 대항헤게모니의 구축을 통해 이러한 지배계급의 헤게모니를 타파하기 위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바로 여기에서, 그람시가 상부구조의 자율적이고 적극적인 기능에 주목함으로써 무엇을 밝히고자 했는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람시는 상부구조를 경제적 토대에 단순히 종속되는 것으로 파악하지 않았으며, 계급을 영속시키며 피지배계급의 계급의식 발전을 방해하는 데 있어 상부구조가 하는 역할을 일관되게 강조하였습니다. 상부구조는 그 자체가 이미 생산관계의 재생산에 관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계급투쟁은 바로 그 곳 상부구조의 영역에서 역시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경제적 토대 영역에서의 투쟁만으로 지배계급의 헤게모니는 결코 타파될 수 없으며,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영역에서의 계급투쟁이야말로 헤게모니 투쟁에서 주요한 요소로 간주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후주
*그람시 해석을 둘러싸고 여러 논쟁들이 존재해 왔습니다. 대표적으로는 보비오와 텍시에르의 논쟁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샹탈 무페, 「오늘날의 그람시」, 샹탈 무페 편/장상철․이기웅 옮김, <그람시와 마르크스주의 이론>, 녹두, 1992.)
** 페리 앤더슨은 그람시의 용어들과 용어들 간의 관계가 여러 측면에서 변형 혹은 변이(變移)를 겪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계에 대한 상이한 진술들과 그에 따른 헤게모니 개념의 의미의 진동을 앤더슨의 구분에 따라 일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국가는 시민사회와 대조를 이룬다. 즉 헤게모니는 시민사회에 속하고 강압(지배)은 국가에 속합니다. 지배 그룹은 사회를 통하여 헤게모니를 행사하고, 국가와 그 사법적 정부를 통해서 직접적으로 지배합니다. 지배계급은 전체 사회에서의 헤게모니를 통해서 그들의 사회적 지배에 관한 ‘동의’를 획득하지만 국가의 강압 기구를 통제함으로써 지배를 행사합니다. “국가는 지배계급이 자신의 지배를 정당화․유지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피지배계층으로부터 능동적인 동의를 얻는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이론적․실제적 행위의 총체적 복합체이다”(그람시 옥중수고). ② 국가는 시민사회를 포괄한다. 즉 국가가 시민사회를 ‘둘러싸고’ 있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국가 개념은 시민사회라는 개념에 돌려져야 할 요소를 포함한다(국가=정치사회+시민사회라고, 즉 강압으로 무장한 헤게모니라고 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경우에는 헤게모니가 강압이라는 한 극에 대조되는 동의라는 또 다른 한 극이 아니라 동의와 강압의 합입니다. 헤게모니는 더 이상 시민사회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시민적 헤게모니’와는 대조되는 ‘정치적 헤게모니’로서 국가 안에 자리잡게 됩니다. ③ 국가는 시민사회와 동일하다. 따라서 동의와 강압이 국가에 공존하게 되고, 헤게모니는 국가기구 자체로부터 분리될 수 없습니다. 시민사회와 정치사회 사이에 헤게모니가 분배되는 현상도 이제는 없어집니다. 국가와 시민사회는 보다 더 큰 통일체로서 부상하게 됩니다. 국가는 사회구성체 자체와 동일하며, 정부적인 기구와 사적인 기구를 포함합니다. 즉 모든 이데올로기적․정치적 상부구조―가족, 노동조합, 개량주의 정당, 사적인 통신수단 등을 포함한―는 국가기구, 다른 말로 하면 헤게모니 기구로서 정의됩니다. (페리 앤더슨, 「안토니오 그람시의 이율배반」, 김현우 외 편역, <안토니오 그람시의 단층들>, 갈무리, 1995.
Marx가 자본주의 사회의 몰락을 예견한 이래로 많은 논의가 있었으나, 자본주의 사회는 Marx가 예견한 것보다는 훨씬 강한 자생력이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Marx의 기본 입장을 따르면서 새롭게 전개된 자본주의 사회의 분석을 위해 수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학자가 이탈리아의 Marxist인 Antonio Gramsci입니다. Gramsci의 옥중수고를 읽으면서 그가 어떻게 Marx의 생각을 받아들이면서, 다른 한편으로 수정하고 있는지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다음의 문제들에도 관심을 가지면서 옥중수고를 읽기 바랍니다.
1. Gramsci가 사용하는 hegemony 개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2. 자본주의 사회에서 hegemony적 지배가 가능한 이유는 무엇인가?
3. hegemony가 작용하는 공간으로서 시민사회는 어떤 특징을 지니는가?
4. 시민사회와 대비되는 실체로서 국가는 어떤 특징을 지니는가?
5. 자본주의 사회의 hegemony적 지배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그람시의 위대한 저작 옥중수고를 읽는데 도움이 되실 겁니다.
'책의 우주 > 文史哲科靈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계화와 그 불만 –스티 글리츠 (0) | 2017.05.11 |
---|---|
철학자의 사물들 장석주와의 첫 만남 (0) | 2017.05.04 |
기호로 소비되는 육체 (0) | 2017.04.27 |
자기 앞의 생 (0) | 2017.04.17 |
기호로 소비되는 육체 : 여성 육체의 상품화 논리 쟝보드리야르 (0) | 2017.04.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