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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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화차', 절망의 극단 앞에서

슈레딩거의 고양이 2017. 3. 24. 13:05


2012년 '화차'를 2017년 다시 보다. 


 2012년 5월 어느날 화차를 보고 난 후 멍했던 기억이 난다. 화차의 영어 제목은 'helpless' 무력한, 속수 무책이다. 한 개인이 냉혹한 현실 앞에 처참히 무너지는 모습에 분노 보다는 안타까움이 먼저 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2017년 다시 화차를 보았다. 화차를 기점으로 다른 배우가 된 것 같았던 김민희가 최근 화제가 되어서 인지 다시 눈길이 갔다. 화차는 김민희가 '배우'라는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게 만든 영화다. 2008년 이었던거 같다. 압구정 길가의 스포츠카 옆에 서있던 김민희를 본 적이 있다. 그는 현실에서 존재 하지 않을것 같은 비율로 나를 멈춰서게 했었다. 멍한 시선, 가느다란 팔과 다리. 바람에 날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영화는 미야베 미유키 소설 화차를 원작으로 한다. 미야베 미유키는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는 일본 미스터리 소설의 여왕으로 불리우는 작가다.  그는 사회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이야기를 끌고 가면서도 진부하거나 감상 적이지 않다. 마치 '7번방의 기적'에서 보이는 진부함과 유치함이 없는 것이다.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다 27살 때 세번의 투고 끝에 '우리 이웃의 범죄'라는 추리소설로 요미모노 추리소설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이후 수상과 주목을 받으며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1992년 그는 '스나크 사냥'과 '화차'를 발표하며 대가의 반열에 오른다. 당시 일본의 개인 파산이 심각했는데 이런 주제를 잘 풀어낸 화차는 큰 화제를 모았다. 그가 이후 시대 물에도 몰두하며 다양한 장르를 소화 한다. 특이하게 그는 비디오 게임을 많이 좋아해 게임 공략본  수집이 취미라 한다.  이런 영향으로 SF 환타지 소설 '드림 버스트'를 썼다. 그녀는 변영주 감독이 보내준 화차 DVD 세번째 보고 있다면서 소설을 쓸 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시각으로 인간 관계를 새롭게 조명한 점을 높이 사주었다고 한다. "초반부터 서스펜스가 넘치고 종국에 가서는 가슴 아픈 사랑을 다룬 영화라고 하시면서. 배우들도 칭찬하시면서"라고 했다. 


 7년만의 화차를 만든 변영주 감독은 3년간 20고나 하며 각색에 몰두 했다고 한다.  영화의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전국을 유랑하며 54회차 촬영을 75일 간 해내며 만든 영화다. 변영주 감독은 '낮은 목소리'를 통해 한국 독립영화를 대표하는 여성 감독이었다. 이화여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대 영화학과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1993년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으로 연출을 시작했다. 1995년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를 통해 이름을 알리게 되었고,. 2002년에는 김윤진 이종원 주연의 밀애를 통해 상업영화로도 진출하였다. 2004년에는 윤계상, 김민정이 나오는 청춘영화 발레 교습소를 만들었는데, 흥행은 참패(10만명 수준)했지만 영화 내용은 호평을 받았다. 이후 '텐텐'과', '20세기를 기억하는 슬기롭고 지혜로운 방법'을 연출 하였다. 2012년 오랜 준비를 통해 '화차'를 개봉하여 242만이라는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순제작비가 18억원에 손익 분기점이 100만명 인데 개봉 7일 만에 100만명이 보았다. (당시 흥행 바톤을 이어받은 영화가 '건축학 개론'이었다.) 변영주 감독은 "원작은 영화화 하기 굉장히 힘든 작품이다."라고 했다. "원작에서는 40대 형사가 독자에게 설명을 해주는 형식인데 이것이 과연 영화가 가능할 것인가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최종 20고까지 시나리오를 썼는데 마지막에는 배우들과 함께 짰다."라고 했다. "원작의 힘과 정서를 어떻게 바로 지금의 이곳으로 가져오느냐가 관건이었죠. 사건을 의뢰하고 빠지는, 원작에 없는 문호(이선균분)라는 여자의 약혼자 캐릭터를 만들면서 돌파구를 찾았어요"라 했다. 그는 원작의 제3자가 아닌 피해 당사자인 문호의 시선을 통해, 바라보는 영화가 아닌 직접 체험하는 영화가 가능했다고 했다.  그는 2012년 제48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분 감독상 및 제 13회 올해의 여성 영화인상 등을 수상했다. 다큐멘터리에서 상업영화까지 넓은 폭을 가진 감독으로 앞으로의 작품도 기대가 많이 가는 감독이다. 연출에 섬세함과 힘이 있고 세상을 보는 시선이 녹아 있는 영화를 만드는 소중한 감독이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결혼을 앞둔 여자 경선(김민희 분)이 갑자기 사라진다. 그녀를 찾기 위해 몸부림 치는 남자 문호(이선균 분). 진실에 접근 할수록 그녀가 누구있지 알 수가 없다. 그녀의 모든 것은 거짓 이였고 살인 사건과도 연관 되어 있다. 문호는 사이가 틀어진 형 종근(조성하 분)에게 사건을 의뢰한다. 둘은점점 그녀의 실체에 다가 선다. 하지만 다가 설수록 당혹감은 커져 만 간다. 영화는 미스터리 스릴러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추격자 같은 마초 스릴러가 아니다. 섬세한 캐릭터 중심의 섬세한 연출로 긴장을 만들어 가는 영화다. 주인공들의 행동, 표정, 눈빛, 대사가 섬세한 결을 만들며 영화의 이야기를 끌고 간다. 전직 강력계 형사인 종근의 액션은 어설프고 바보스러워 보인다. 감독이 일부러 연출한 것으로 보인다. 스펙타클하고 정교한 액션을 통해 스릴을 만들어 가지 않고 캐릭터의 대사와 표정을 통해 긴장을 만들어 간다. 특히, 장소가 만드는 분위기는 영화적 고조감을 극대화 시킨다. 단순한 줄거리 임에도 보는 내내 긴장하게 만드는 감독의 연출과 연기자들의 놀라운 연기가 앙상블을 이룬다. 


 '화차'는 일본 전설 속의 지옥으로 가는 '불수레'로 악행을 저지른 망자를 태워 지옥을 향해 달리는데 한 번 올라탄 자는 두번 다시 내릴 수 없다. 여주인공 차경선은 화차에 올라타 지옥을 향해 간다. 영화는 부모의 빚으로 인해 팔려 갔던 차경선이 고통스러운 삶을 벗어나려 화차에 오른 삶을 추적해 간다. 악행으로 마땅히 죽어야 하지만 그녀에게 무작정 돌을 던질 수 없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상황에 자신의 생존을 위해 범죄의 길로 들어선 그녀다. 궁지에 몰린 피해자가 선택하는 것은 또 다른 피해자다. 변영주 감독은 인터뷰에서 "피해자가 자신과 유사한 인물을 골라 피해자로 만드는 걸 통해 당대의 사회적 문제를 극대화했죠."라는 말로 영화를 설명했다. 미스터리로 시작해 안타까움으로 치닫는 영화다. 벗어나고 싶은데 벗어 날수가 없다. 그녀가 피해자를 만들었을 때 화차에 탄 것이 아니라 빚을 진 아버지를 만났을 때 이미 화차 위에 올려져 있었던 것이다. 절망적 상황에서 극단의 선택을 하는 경우는 우리 주위에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라지만 삶은 그렇게 우호적이질 않다. 가계부채 1300조 시대다.  헬조선이라고 한다. 지옥으로 치닫는 현실에서 많은 이들이 고통스러워 한다. 그들을 돌아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한 때이다. 변감독은 선영에 대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 주변의 이웃"이라고 했다. "다만 평소에 무심하게 지나쳤던 주변과 사람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갖게 되면 더할 나위가 없다"라고 하며.


 김민희는 차선영이라는 배역을 그 만큼 연기할 사람이 누구일까 생각할 정도로 좋은 연기를 보여 주었다. 절망 가운데 행복을 찾기 위해 극단의 선택을 하는 사람의 눈빛을 잘 그려냈다. 범죄를 저지르고 죄책감이 울부짖다 다시 정신을 가다듬는 장면은 '차선영'을 잔혹함이 아닌 안타까움으로 보게 만든다. 절망의 눈빛, 이기적인 악인의 눈 빛, 불안한 행복감의 눈 빛, 들킨자의 눈 빛... 다 다른 느낌으로 잘 연기했다. 한국영화의 소중한 자산이다. 그녀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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