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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

슈레딩거의 고양이 2017. 3. 26. 23:59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중 아리스토텔레스 (오른쪽) 그의 스승 플라톤이 하늘 (이데아)를 가리키고

그는 땅을 가리킨다. 현실주의자, 학문의 아버지 아리스토텔레스 



"인간은 본래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공동체 안에서만 완전해질 수 있다."


많은 학문의 시조로 불리우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에서 기소 당했지만 소크라테스 처럼 기꺼이 독배를 마시지 않고 떠났다.  그의 스승과 같이 이상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는 떠나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테네인들이 두 번 다시 철학에 대항하여 죄 짓기를 원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은 플라톤과 달리 현실적이며 실질적인 문제를 제기한 저작이다. 그는 고대 도시들의 정치 형태를 연구해 "정치학"이라는 학문을 만든 것이다. 그는 이 저작을 통해 실제 정치에 적용이 가능한 정치교육과 지침을 제시했다. 


그럼 그는 이상 국가에 대한 견해를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그는 세밀하게 당시 정치 체제를 분석해 나간다. 

 국가는 근본적으로 사람들의 집합체이자, 공동체이다. 이러한 국가는 동질적 단위로 단일화 보다는 다양성을 인정해 주어야한다. 국가의 구성원들은 각기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서로 보완적인 역할을 하고 각기의 서로 다른 봉사를 상호 교환함으로써 모두 다 더 높은 그리고 더 나은 삶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국가와 같은 진정한 통일체는 서로 종류가 다른 여러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어야 한다. 국가는 서로 다른 요소로 구성되며, 서로 다른 능력을 상호 교환하는 하는 공동체이다. 가정은 개인보다 더 높은 차원의 자급자족을 성취할 제도이며 국가는 또한 가정보다 더 높은 차원의 자급자족을 이룩할 수 있는 제도이다. 국가는 자급자족을 이루기에 충분할 만큼 다양화 되고 클 때 에만 이 목표를 달성하고 완전한 국가가 된다. 또한 국가는 항상 그 구성원들이 여러 계급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처자식의 공유는 실현 불가능한 것이며 전체적인 조화에 기여하지 못한다. 물론 피지배계급인 농민사이에서는 유익하다. 이는 우애정신을 없앰으로써 혁명이나 반란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재산은 소유에 있어서는 사유제 이어야 하지만 사용에 있어서는 공동으로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자연적인 감정의 만족은 쾌락을 가져오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적절한 이기심이 필요하다. 이기심 자체는 비난의 진정한 대상이 아니며 지나친 이기심이 비난의 대상이다. 국가가 일체성을 강조하면 친절한 일을 하거나 도움을 주는 일을 막게 되어 선의 활동을 방해한다. 지나치게 일체화되어 있는 국가에서는 아무도 관대함을 보이거나 혹은 관대한 행동을 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관대함이란 사유재산을 적절히 사용할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부의 사용의 있어서 절제와 더불어 넉넉함이 필요한 것이다. 출산율도 적절한 선에서 제한하지 않으면 필연적 결과로 빈곤이 생기며 내분과 사회악 낳게 된다. 재산의 분배가 불평등할 때에는 대중은 혁명적이 되며 관직의 분배가 평등할 때는 지식층이 혁명적이 된다. 사람의 욕망의 본성은 무한하다. 따라서 순수한 평등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모두 싫어하게 될 것이다. 이에 재산의 평등화 보다는 탐욕의 통제에 대해서 훈련시키는 것이 났다.

시민과 헌정질서에 대한 이론: 도시국가 혹은 국가란 여러 개의 서로 다른 부분으로 이루 어진 전체이다. 시민들로 이뤄진 복합체이다. 시민은 관직과 법정의 운영에 참여하는 사람이다. 

국가는 자급자족의 생활을 이룩할 수 있는 적당한 수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단체이다. 국가의 본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은 국가의 정치질서 이다. 시민은 활동하는 능력이 다르다 하더라도 모두 공통의 목적을 갖고 있는데, 공동 목표는 바로 그들의 결사가 안전하게 운영되는 것이다. 최선의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좋은 시민이 있어야 한다. 좋은 시민은 지배를 하며 동시에 지배를 받기에 필요한 지식과 능력을 겸비해야 한다. 시민의 우수성은 자유인을 이러한 양쪽 입장에서 모두 다룰 수 있는 지식에 있다. 

정치질서는 일반적으로 관직들에 관한, 그러나 특별히 모든 문제에 있어서 최고의 권위를 갖는 특별한 관직에 관한 도시국의 조직이라 정의 할 수 있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정치적 공동체에서 살도록 되어 있는 동물이다. 정치질서란 말은 주권체 와 같은 말이다. 모든 국가에 있어서의 주권체는 최고 권위체이며 최고 권위체는 필연적으로 한 사람 혹은 소수 혹은 다수의 사람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폭군정치는 왕정의 타락한 형태이고, 과두정치는 귀족정치의 타락한 형태이고 민주정치는 혼합정치의 타락한 형태이다. 

국가의 목적은 그저 생존만이 아니며 좋은 생활의 질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 국가는 선을 고취하는 목표에 헌신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국가란 같은 장소에서 함께 살기위한 결사가 아니며, 교환을 순조롭게 하거나 상호간에 옳지 못한 짓을 막기 위해서 생겨난 결사도 아니다. 국가를 구성하는 것은 가정들과 부족들이 좋은 생활을 하도록 즉 완전하고 자족적인 생존을 이룩하도록 하기 위한 결사인 것이다. 그리고 사회생활의 제도들은 그 목적에 대한 수단인 것이다. 시민들은 심의와 사법적인 기능에 참여하여 이상적인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 헌정질서에 맞도록 법률은 제정되어야 하며, 다양한 시민들이 모여 올바르게 제정된 법률들은 최종적으로 최고의 권위를 가져야 한다. 

정치 분야의 선은 정의이다. 정의는 공동이해를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있다. 정치적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존재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관직을 담당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자유민이어야 하며 납세자여야 한다. 시민이란 선에 부응하는 생활 방식을 성취하려는 목적을 갖고 지배를 하며 또한 지배를 받는 능력과 용의가 있는 사람을 말한다. 사람의 수가 많으면 부패의 위험성이 적다. 법은 신과 이성의 순수한 목소리처럼 어떤 감정의 요소도 없는 이성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법은 중립적인 권위이다. 

정치적 이상과 교육적 원리: 최선의 정치질서란 최선의 생활 방식과 합치된다. 이를 위해 선 즉 지혜, 용기, 절제, 정의가 추구 되어야 한다. 도덕적으로 최선인 국가가 행복하며 또한 형편이 좋은 국가라는 원칙에 도달하게 된다. 개인이 선과 지혜가 있어야 하듯 국가는 선과 지혜가 없이는 올바를 수 없다. 개인의 행복과 국가의 행복은 동일하다. 최선의 정치질서는 모든 사람이 최선 상태에서 행복하게 생활하도록 해주는 정치적 조직이어야 한다. 행복이라는 것은 행동의 상태이며, 선을 많이 이행하는 올바르고 절제 있는 사람들의 행동이다. 개인에게 있어서 최선의 생활 방법이 국가 전체와 국가의 모든 구성원들에게도 최선의 생활 방법이다. 국가의 필수 요건은 첫째로 인적자원이다. 양보다는 능력이 척도가 되어야 한다. 자족할 수 있는 만큼의 인구가 필요하다. 영토는 모든 종류의 농작물을 생산하여 여유 있는 생활과 절제 있는 생활을 결합하는 여가 있는 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이상 국가에 필요한 기본적 조건들은 시민체의 적절한 규모, 시민들의 자연적 품성의 적절한 성격, 영토의 적정 규모와 알맞은 토양의 품질이다. 최고의 선은 행복이며 그것은 활동력과 선의 완전한 행사에 있다. 국가는 식량, 기술과 기능 무기, 일정한 재산의 공급, 종교제도, 공동이해를 위한 필요, 사적거래의 정의를 요소로 포함하고 있다. 국가는 우연히 이루어진 집단이 아니다. 정치질서에 있어 다양한 체제가 가능하다. 국가는 나이와 계급에 따른 분화를 이룬다. 국가는 위생에 신경 써야 하며, 성벽을 통해 외부의 침략에 대비해야 한다. 행복이란 완전한 수준으로 그리고 절대적이며 상대적인 아닌 방식으로써 선을 실천하는 것과 그 힘이다. 국가는 그 국가의 통치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선에 좇아 선하게 된다. 개인들은 자연적인 천품과 우리가 형성하는 습관들, 내부의 이성적인 원칙은 사람을 선하고 덕성 있게 만든다. 입법자의 교육을 통해서 이를 진작시켜야 한다. 선은 개인이나 공동체 있어서 동일하다. 국가는 국민들이 안전과 책임과 능력을 갖추도록 해 주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을 통해 기원전 4세기의 고대 그리스의 개인과 공동체의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스승의 논리를 비판도 하며, 또한 자신의 논리를 구체적 사례를 제시하며 논리를 강화하는 글 속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얼마나 당대의 이상적인 국가의 건설에 대한 고민을 했는지 알 수 있다. 많은 도시국가들을 보며 과연 어떠한 정치질서가 최상의 선을 구현할 수 있는가라는 그의 숙고를 느낄 수 있다. 정치적 평등으로 모두가 참여하는 정치질서를 얻었지만, 민주정치가 오히려 중우정치가 되어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몰고 간 민주주의체제의 불완전성, 스파르타의 전제적 모습 등 주변의 많은 도시국가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정치질서 속에서 과연 어떠한 국가의 모습이 이상적인가 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깊은 고민이 정치학이라는 대작을 이끌어 냈을 것이다. 

 그의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주장은 단일화 된 모습이 아닌 다양성을 주장하는데 이러한 그의 주장은 현대 사회에도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다양성을 존중되어 질 때 공동체는 더욱 풍요로워 짐을 그는 보았던 것이다. 이기적 본성을 지닌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서 서로의 다양성을 존중해 줄 때, 보다 행복한 공동체를 이룸을 꽤 설득력 있게 주장하고 있다. 또한 절제를 말하면서도 안정적이고 넉넉함을 강조하는 모습 속에서 그의 철학의 중심인 중용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욕구와 욕망에 대한 절제가 행복의 중요한 것임을 말함과 동시에 개인이 만족할 수 있는 기본적인 경제적 토대를 놓치지 않고 있다. 이는 어떻게 보면 인간 답게 살기 위한 복지의 개념도 유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정치학은 쓰여진 시대는 노예가 엄연히 존재하던 시대였다. 그도 역시 시대의 한계 속에서 자신의 이상적인 국가나 개인을 만들어 가고 있다. 계급에 의한 차별에서는 그도 역시 시대의 틀 안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인간이 이기적인 본성을 주장한 것도 아마, 자신의 위치한 계급 즉 시민의 행복과 선을 위해서는 부녀자, 미성년자, 외국인, 노예의 희생이 강요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본인 자신이 알았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자신이 살고 있는 당대의 도시국가에 대한 깊은 이해와 분석은 정말 그가 왜 ‘학문의 아버지’라 불리 우는지 알 수 있었다. 만일 그가 현대 도시에 온다면 너무나 복잡하고 거대해진 국가와 개인에 모습에 어떻게 생각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2300년 여 전의 저작 이기에 우습기 까지 한 주장도 보이지만, 그의 깊은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기본적 이해는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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